일본에서 요즘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12월 일본 구인난 25년 5개월 최고…1명당 일자리 1.43개 등의 기사가 뜨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구직자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구인난이 일어난 배경은 저출산이 지속된 결과이다. 이에 한국에서도 이러한 저출산이 미래의 구직난을 해결할거라고 한단다. 물론 지금의 일자리 정책에는 도움이 안 되는 얘기지만, 20~30년 정도 후에는 지금의 일본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국이 그때까지 버티느냐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 체질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경제를 보면, 마치 2차대전 직전의 거함거포주의를 보는 것만 같다. 작은 배들 여러 척보다는 큰 전함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국의 역량의 한계로 인해서, 많은 전함은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함을 만들었다는 것도 과거의 거함거포주의와 동일하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실이 없고, 약점을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했단 뜻이다.

  더구나 한국의 저출산 추세는 일본보다 더 빨리, 급격하게 찾아왔기 때문에, 완만한 인구감소가 아니라 그저 인구의 급감이라는 사실이 일본보다 더 암울한 미래를 점치게 한다.


  그렇다면 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물론 저출산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어지니까 나라가 소멸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다른 문제가 먼저 생길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문제가 '노인부양' 문제이다.


  노인부양정책은 결국 지금의 노동세대가 지금 노인세대를 먹여살리고, 30년 정도 후에는 지금의 노동세대는 미래의 노인세대가 되고 새로운 세대가 노동세대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인구감소 추세에서는 노인부양정책이 유지될 수가 없다는 것.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마치 "미래에 굶어죽기 싫으면 아이를 낳고 길러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것을 게임 이론으로 생각해 보았다.


  1. 나는 애를 낳고 다른 사람은 애를 안 낳는다.

  2. 나는 애를 안 낳고 다른사람은 애를 낳는다.

  3. 모두 애를 안 낳는다.


 

 다른 사람은 양육한다.

 다른 사람은 양육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양육한다.

모두 이익을 얻는다. 

나에게 큰 손해가 돌아온다. 

 나는 아이를 양육하지 않는다.

 나에게 큰 이익이 돌아온다.

모두에게 적은 손해가 돌아온다. 


  1의 경우는 내가 큰 손해이다. 나는 애를 낳고 기르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고, 사실상 애 키우느라 저금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애를 안 낳아서 애 키우는 비용을 절약한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애는 다른사람들까지 부양하고 있다. 결국 나에게 큰 손해가 된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과도한 세금부담으로 인해 고통받거나 또는 노인부양정책 폐지 운동가(현대판 고려장 법안, 이라고 부를까?)가 될지도 모르겠다.


  2의 경우는 내가 큰 이득이다. 1의 경우에서 나와 다른사람을 바꿔 생각하면 된다.


  3의 경우에는 모두가 손해이다. 그런데 1보다는 적은 손해가 돌아온다.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응답을 할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명백히 알고 있다. 출산율 세계평균 2.5명·한국 1.3명…"꼴찌서 4번째" 이런 상태라면 애를 낳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생생경제]양육할수록 빈곤...출산율 1.24명도 대단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저출산은 '재앙' 수준이겠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보면 오히려 '출산' 이 재앙처럼 보인다. 이러한 딜레마가 너무나 강력해서, 생명의 가장 강력한 본능인 '후손을 만드는 것'조차도 이기는 것이다. 이는 자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늑대는 가뭄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스스로 출산을 억제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지금은 가뭄인 것이다.

  어찌됐든 생명이 생명을 만드는 본능이 있기에, 이러한 문제는 조금만 상황을 개선해도 출산율 반등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이익을 얻는 조정 게임으로 나아가는 방법에는 캠페인 같은 광고들도 물론 있겠지만 그건 본질적인 문제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양육비 지원 관련 정책도 효과적이지만 어디까지나 흉내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광고는 도리어 역효과



  첫째, 이 딜레마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딜레마는 합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이 딜레마로부터 면제된 특권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산을 보유하고 이를 자신의 후손에게 얼마든지 남겨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딜레마는 일반 서민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 서민에게 이 딜레마는 '나와 나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지만, 특권층에게 이 딜레마는 '내 후손이 부릴 노예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빈부격차 감소, 그리고 부의 대물림 고착화를 완화해야 한다. 다른 방법도 물론 있다. 우민화 정책을 통해 '왕후장상의 씨는 원래부터 다르다' 는 것을 뇌에 새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와서 우민화 정책을 하기엔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 똑똑하다.


  둘째, 이 딜레마의 리스크를 덜어줘야 한다. 안정된 직장을 통해서 "이 딜레마에서 지면 난 자살각이야" 라는 상황을 면해줘야 한다. 지금 현재는 애를 낳을 나이대의 세대들은 미래가 너무 불안하므로 이익을 늘리려는 선택보다는 손해를 줄이려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가 안정적이면 좀 더 도전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셋째, 강력한 사회복지정책+조세정책을 통해서, '애를 안 낳고 저금하는 게 유리'라는 선택지를 너프시켜야 한다. 너프-나무위키 컴퓨터 게임에서 소위 말하는 밸런스 조정이다. 지금 딜레마에서 애를 낳지 않는 경우의 이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복지국가로 서둘러 전환하여 '애를 낳지 않을 경우의 이득을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급하게 생각해 본 해결방안들이지만, 사실 방향은 오로지 하나이다. 무지의 베일 실험이란 사고실험이 있다. 만약 내가 곧 태어날 영혼이고, 내가 태어날 나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자. 단, 태어날 나라는 선택 가능하지만 그 나라의 어떤 사람이 내 부모가 될지는 선택이 불가능하다. 이 때, 나는 어떤 나라를 고르겠는가?

  나의 태어날 아이의 영혼은 아직 지능수준 발달이 덜 되어서, 아마 어떤 나라를 고르는 것이 유리한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알고 있다. 소말리아 같은 곳을 선택하는 것은 1/10점짜리 선택이고, 멕시코나 북한 같은 나라는 3/10 점 정도이다. 대한민국을 선택하는 것은 5/10 점쯤 될 거 같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정답은 유럽의 복지국가 아닐까? 아마 9/10점은 되는 선택지 아닐까 싶다.


  결론은 하나이다. "애를 낳고 살 수 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면 된다. 그것조차 하지 않고서 기저귀 값 50만원 던져준다고 해서 애를 순풍순풍 낳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은 멍청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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